연방준비제도의 격변
2008년 말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 금융 시스템이 붕괴했다.
이 위기는 연준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도록 떠밀었다. 연준은 달러를 새로 찍어서
은행 시스템에 투입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에 그 권한을
전례 없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연준의 조치와 관련된 금융 지표들이 그래프를 보면 다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어느 범위 안에서 평평하게 이어지던 선이 갑자기 수직 번개 모양처럼 뛰어
오르는 것이다. 이 급등은 위기와 싸우기 위해 연준이 전례 없이 많이 찍어낸 돈의 양을 반영한다.
1913년부터 2008년 사이에 연준은 통화량을 50억 달러에서 8,470억 달러로 서서히 늘렸다.
이러한 점진적인 증가로 이 시기의 통화량 그래프는 완만한 상승 곡선을 보인다. 그런데 2008년
말에서 2010년 초 사이에 연준은 무려 1조 2,000억 달러를 새로 찍어냈다. 100년에 걸쳐 늘었어야
할 화폐량을 1년 남짓한 기간에 공급해 (경제학자들이 부르는 용어로) '본원통화'가 갑자기 두 배
이상이 되게 만든 것이다. 이 모든 새로운 돈과 관련해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연준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만 돈을 창출할 수 있다. 새로 달러를 만들어서 거대 은행들의 금고에 넣는 것이다. 특별히
지정되어 있는 24곳 정도의 금융기관만 연준이 새로 찍어내는 돈을 받을 수 있고 이 기관들이 통화
공급의 묘판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은행 시스템이 보유하게 된 초과준비금이 2008년 위기 이전에
20억 달러 수준이던 데서 2010년 2월에 약 1조 2,000억 달러로 600배나 증가했다. 이 모든 과정
에서 연준은 미국 금융 시스템의 토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풀린 상태를 기본
전제로 한 논리에 따라 금융 시스템이 돌아가게 된 것이다.
6주에 한 번씩 열리는 FOMC에서 '금리를 설정한다'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이는 연준이 초단기 대
출의 가격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 초단기 대출금리가 전체 금융시스템에 파장을 일으켜서 모든 회사
, 모든 노동자, 모든 가계에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둔화되고 금리를
내리면 경제가 촉진된다. FOMC 위원들은 원전 제어실의 엔지니어와 비슷하다. 출력이 더 필요하면 금
리를 내려서 원자로의 반응을 더 활성화시킨다. 여건이 너무 과열되면 금리를 올려서 원자로의 반응을
둔화시킨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연준이 한 가장 중요한 일 하나는 사실상 처음으로 금리를 제로까지 낮춘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 금리가 짧게 제로에 닿을락 말락 했던 적이 있긴 하다). 경제학자들은
0% 금리를 '제로 바운드'라고 부른다. 그리고 전에는 0% 금리가 절대로 깨질 수 없는 하한선이라고
여겨졌다. 그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금리가 높으면 돈을
빌릴 때 값을 더 많이 치러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돈이 비싼 것이다. 그리고 금리가 제로이면 연준에서
직접 돈을 받아올 수 있는 은행들에는 사실상 돈이 공짜다. 경제학자들은 돈의 조달 비용이 0보다 더
내려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제로 바운드는 연준이 금리를 통제할 수 있는 여지의 한계선을
의미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연준은 제로 바운드에 도달했다. 그런데 더 중요
한 것은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로에 도달한 뒤에 연준은 금리를 다시 올리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이는 은행들이 계속해서 돈이 공짜인 환경에서 대출을 해주어도 된다고 믿게 했다. 은행들은 제로 바운
드 여건에서 사는 삶이 꽤 길게 지속되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2010년 무렵에 FOMC는 괴로운 난제에 직면했다. 금리를 제로에 고정해 두는 것만으로는 충
분치 않아 보였다.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경제의 건강 상태는 아직도 매우 좋지 않았다. 실업률은 여전
히 심각한 침체 수준에 가까운 9.6%였다. FOMC 위원들은 높은 실업률이 오래 지속될 때 발생할 악
영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일자리가 없으면 사람들은 숙련된 기술을 잃게 되고 희망도
잃게 된다. 그렇게 해서 사회에서 뒤로 밀려나면 해고로 발생했던 경제적 타격에 더해 피해가 한층 더
커진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자녀까지도 장기적으로 소득 잠재력이 떨어진다. 연준 안에서는 이것이
긴급한 상황이므로 빠르게 이를 멈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자칫하면 막 시작된 회복
세가 꺾일지도 몰랐다.
출처 : The Lords of Easy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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