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RP시대의 레포시장은 완전히 변했다.
금융위기 전에 레포시장은 주로 은행들이 이 시장을 사용했다. 하지만 ZIRP시대에는 현금이 너무 많아서 레포시장을 전처럼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일군의 새로운 금융 플레이어들이 레포시장으로 들어왔다. 바로 헤지펀드였다. 헤지펀드 등 비은행 행위자의 오버나이트 레포 론 거래 규모는 2008년에서 2019년 사이에 두배로, 금액으로는 1조 달러 규모이던 데서 2조 달러 규모로 늘었다. 2조 달러라는 숫자도 레포시장이 헤지펀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 되었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헤지펀드는 레포 부채를 훨씬 더 큰 부채 구조를 만드는 토대로 사용했다. 레포시장에서 돈을 빌린 뒤 그 돈으로 시장에서 더 큰 배팅을 하는 자금으로 사용한 것이다. 월가는 이 기법을 '레버리지 업'이라고 부르는데, 가령 1달러를 빌려 10달러짜리 도박에 돈을 지불 한다는 뜻이다. 헤지펀드는 오버나이트 레포 론으로 빌린 2조 달러를 사용해 시장에서 그 레포 론 자체보다 훨씬 더 큰 포지션을 쌓았다.
연준도 헤지펀드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완전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헤지펀드가 레포 대출을 전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는 것은 명백했지만 그 이유는 명백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 자금을 대기 위해 이 돈을 빌리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이것은 알 수 없었다. 헤지펀드가 은행만큼 강하게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는 그림자 은행 시스템의 일부여서 예보나 도드-프랭크법의 감독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약한 규제의 근거는 헤지펀드는 충분히 전문적인 내용을 잘 아는 투자자이므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기 책임하게 자기 능력대로 거두는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019년에 레포시장이 붕괴하고 몇 달이 지나서도 재무부는 헤지펀드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폭발이후 잔해를 발굴하는 법의학자 처럼 실마리를 발견했다. 헤지펀드는 '베이시스 거래'라고 불리는 매우 특수한 거래를 늘리고 있었다. 베이시스 거래는 연준이 수년 동안 양적완화와 ZIRP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장 안정성 덕분에 가능해진 기법이었다. 배이시스 거래는 인위적으로 강제된 안정성의 환경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즉 격한 시장 요동이 발생하면 연준이 들어와 개입해줄 것이라고 트레이더들이 믿을 때만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만족되면, 시장의 요동이 없는 한 헤지펀드는 수천억 달러를 빌려서 리스크가 사실상 제로인 거래를 할 수 있다.
설계는 간단하다. 헤지펀드 트레이더는 금융시장에서 거의 언제나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인, 약간의 거래 차익을 올릴 만한 구석을 찾아낸다. 이 경우에는 미국채 현물 가격과 선물 가격 사이의 아주 미세한 차이다. 미국채를 오늘 사는 가격과 그것의 선물 가격 사이의 차이를 '베이시스'라고 한다. 헤지펀드는 국채 현물을 매수하고 동시에 같은 양의 국채 선물에 대해 숏(매도) 포지션을 취해서 베이시스만큼의 매우 작은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레포시장이 등장한다. 베이시스 거래의 마진은 본질적으로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액수가 극히 작다. 수익성이 있으려면 헤지펀드는 이 거래를 수천 번쯤 되풀이해야 한다. 헤지펀드들은 바로 이 반복 거래를 위해 레포시장을 이용했다. 매수한 국채를 담보로 레포시장에서 현금을 빌려 선물 거래 포지션을 한껏 쌓아올리는 데 사용한 것이다. 어떤 헤지펀드는 50대1의 비율까지 레버리지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진 돈 1달러당 50달러를 빌려 거래에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헤지펀드는 미국채, 레포 대출, 미국채 선물의 상호 강화적인 세 축으로 위험의 삼각대를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1원짜리 동전을 수백만 개 주워 모으는 것처럼 쉬운 돈이었다. 헤지펀드는 이러한 거래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 재무부가 진행한 조사에서 그 규모를 추산해볼 수는 있었는데, 2014년에서 2019년 사이에 미국채 선물 시장에서 헤지펀드가 보유한 '숏'포지션의 총가치가 2,000억 달러에서 거의 9,000억 달러로 늘었다. 선물 시장에서의 숏 포지션은 이러한 베이시스 거래의 작도에서 핵심이었다.
레포 대출의 가격이 낮고 안정적인 동안에는 베이시스 거래가 잘 돌아갔다. 하지만 레포 대출의 가격이 올라가자 베이시스 거래의 수익성이 즉각 무너졌다. 헤지펀드는 선물 거래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레포 대출을 롤오버하는 비용이 높아진 상황에 처했다. 9월 중순에 레포 금리가 급등했을 때, 특정한 종류의 헤지펀드들이 너무나 절박하게 현금을 확보하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10년 사이에 헤지펀드의 레포 대출 의존도가 2배로 증가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포시장이 헤지펀드에 갑자기 문을 닫고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헤지펀드는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와 모기지담보부 증권을 급히 투매해 유동화해야 하고 그 규모는 2008년에 유동화되어야 했던 물량의 2배까지도 달할수 있었다. 상상만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뻔한 것이다.
9월 17일에 연준은 레포시장에 개입해 절박하게 레포시장에서 돈을 빌리려는 모든 헤지펀드를 구제했다. 그날 레포 대출 금리는 9%였는데 연준은 즉시 돈을 찍어서 2.1%에 대출해주었다. 헤지펀드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레포시장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문을 열었다.
출처 : The Lords of Easy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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